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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이야기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헤세



어려서 부터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낚시를 즐기고 토끼와 자연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소년이다. 그는 총명한 머리로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살아왔고 명예욕이 많은 아버지와 교장선생의 강요로 힘든 공부를 하며 신학교에서 차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신학교의 강압적이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스는 헤르만 하일러라는 반항적인 시인학생을 만나게 되고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하일러와 함께 다니던 한스는 강압적이고 가혹한 규율이 지배하는 신학교의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다소 소극적었던 그는 학교의 규율에 반항하던 하일러와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 하나 뿐인 친구가 퇴학을 당하며 그는 다시 혼자가 된다. 후에 성적마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신경 쇠약까지 앓게 되며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한스는 에마 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에게도 버림받게 된다. 그를 한심하게 보던 아버지의 권유로 기계공장에 취직해 기계공 수련을 받지만 몸이 약한 그는 공장 생활에 적응하기를 힘들어 했다. 마을 사람들도 신학교에 입학 했을 때와 달리 '신학교 대장장이'라며 수근 거리고 냉대하는 것을 보며 한스는 더욱더 움츠려 들게 되었다. 그렇게 방황하다 좌절하기를 반복하다 어느 주말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져 취한 채로 강가를 걷다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다음날 시체가 발견 되고 장례를 치루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구둣방 주인이 교장과 학교 교사들이 한스를 죽인 공범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한스의 죽음이 자살이였는지 사고였는지는 죽은 한스를 제외하고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수레바퀴는 아마 억눌리고 강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매개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제목은 원하지 않지만 하염 없이 뛰어야 하고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의미로 쓰이지 않았나 싶네요. 

주인공은 한스는 원하지 않았지만 욕심 많은 아버지와 교장으로 인해 힘든 공부를 해야 했었고 신학교에 입학해서도 억압적인 규율 사이에서 많이 방황하고 힘들어했었죠. 본인은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라온 환경과 소심한 성격 탓에 하나 뿐인 친구도 잃게 되었죠. 누구보다 총명했던 한스가 만약 자유로운 삶을 살았더라면 누구보다도 빛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을 거에요. 이런 가혹한 운명을 걷게 된 한스를 작가님은 그 당시 전쟁과 전체주의가 낳은 대표적 인물로 표현한 것 같아요. 어른과 세상이 빚은 이런 폭력적인 세상이 결국에는 한스를 죽음으로 몰아 붙이게 돤거죠. 어른으로써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도 아이들은 학업 등수에 연연하고 인생의 전부를 성적으로만 판단하죠. 조금이라도 다른 면모를 보이거나 튀게 되면 모난 돌맹이 처럼 내팽겨치고 그것을 어른들은 그저 무관 할 뿐이죠. 


낚시를 하며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물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던 소년을 누군가 한명 이라도 지켜주었더라면, 아버지로써 한번이라도 그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기도 전에 져버린 이 여린 꽃은 아마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그저 물처럼 흘러 내려갈 뿐이겠죠.

신학교에서 나와 기계공이 되었을 때도 마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시선을 보냈었더라면..하는 생각이 드네요.


성인이 되고 헤르만헤세님의 작품을 읽어보면 청소년기의 겪었던 마음을 정말 적나라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인간으로써 겪는 욕망, 욕심, 사랑,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죄책감들. 모든 사람들이 숨기려고 하지만 인간으로써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잘 표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결국 한스가 자살인지 모를 죽음을 맞이했을 때 가슴이 죄이고 어른으로써 지켜주지 못한 죄악감이 들었어요. 책인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책과 현실을 분리해서 읽은 것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소년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지켜지지 못하고 극적인 결말을 맞는 청소년이 많다는 사실 또한. 

많은 것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 아이 또는 주변에 힘들어 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떨까요.

피지도 못한 꽃들을 썩게 만들고 짓밟아 버리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환경과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이 아니였을지 생각이 듭니다.